|
![]() |
|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의 화통 콘서트 공연명 화통콘서트 공연단체 중구 문화예술감성단체 공동연출 김영옥·한덕택 공연기간 2014년 11월 21일 공연장소 국립극장 KB하늘극장 관람일시 11월 21일 오후 4시 장충동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與民)의 <화통(畵通)콘서트>를 관람했다.
<화통(畵通)콘서트>는 우리의 옛 그림에 국악과 무용을 곁들여 친 대중적인 해설로 공연을 이끌어 간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불염재(不染齋) 김희겸(金喜謙), 양촌(陽村) 마군후(馬君厚), 화재(和齋) 변상벽(卞相壁),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그리고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그림 중 잘 알려진 작품이나, 속화, 춘화 등 대중적인 그림에 들어있는 숨은 이야기를 해설자의 입담과 함께 출연자들이 평시조, 군악, 계명곡, 타령, 소리, 민요, 판소리 등을 피아노, 기타, 피리, 해금, 가야금, 대금, 타악 등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춤사위를 곁들임으로써 관객과의 공감대와 감성과 정서를 이끌어낸 공연이다.
<화통콘서트> 공연에서 그림이 소개된 화가들의 내력을 소개하기로 한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은 조선후기의 화가,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20세에 관직에 나가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宗畵)가 되었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조선의 문신, 서화가이다. 자는 광지(光之), 호는 표암(豹菴),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776년 기로정시에 갑과 1등으로 급제하고, 예조판서에까지 올랐다. 정조 때에 천추 부사로 베이징에 갔을 때, 그의 서화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을 정도로 서화에 뛰어났다. 글씨는 전서·예서를 비롯한 각 체에 모두 능했고 그림은 특히 산수·사군자 등에 뛰어났다. 그의 화풍은 정선(鄭歚)을 계승한 것으로 담담하면서 격이 있고 개성이 뚜렷하였다. 그는 당시 화단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후원자 또는 추진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서로 <표암집>이 있으며 그림으로 <난죽도>, <산수도>, <영통동구도> <자화상> 등이 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그 고유색 짙은 조선 독자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탄생하여 문화의 최후를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화가이다. 김홍도(金弘道)는 7~8세 되던 해에 그의 천재성이 인정되어 사대부 화가 강세황(姜世晃)에게 인정받아 그의 훈도 아래 시문서화(詩文書畵)를 익혔기 때문에 성리학적 소양을 어느 정도 몸에 지닐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성리학을 사상 기반으로 하고 있던 진경시대 문화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듯하다. 단원(檀園)은 그림 재주를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었기에 모든 화과(畵科)의 그림에 능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경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단원이 지목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이전 화가들이 그리지 않았던 민중들의 삶을 그려낸 풍속화들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풍속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서당>, <씨름> 등이 있는데 농사짓는 사람, 빨래하는 아낙 등을 그렸다. 이는 당대로선 상당히 놀라운 전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김홍도의 풍속화가 정조의 개혁정치와 관련이 깊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 외에 신윤복(申潤福)과 마찬가지로 춘화도를 많이 그린 편인데, 운우도첩의 경우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춘화도첩으로 꼽힌다.
“불염재(不染齋) 김희겸(金喜謙 1392~1910)”은 조선 중기의 화가다. 일명 희성(喜誠). 자(字)는 중익(仲益), 호(號)는 불염재(不染齋) 또는 불염자(不染子), 일명 김희성(金喜誠), 본관(本貫)은 전주(全州)다. 서울 인왕산(仁王山) 아래 옥류동(玉流洞)에서 살았다. 1748년 숙종(肅宗, 1661~1720, 조선의 제19대 왕. 재위 1675~1720) 어진(御眞)을 개모(改摹)할 때 장득만(張得萬, 1684~1764, 조선의 화가)⋅장경주(493) 부자(父子)⋅정홍래(535) 등과 함께 참여하였으며, 그 공으로 변장(邊將) 벼슬을 받고 경상도 사천(泗川) 현감(縣監)을 지냈다.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당대(當代) 최고의 문인화가(文人畫家)이며 이론가인 강세황(姜世晃)은 그를 당대의 명가(名家)로 손꼽았으며, 그림을 어전(御殿)에 바치면 곧 왕의 마음에 들게 하였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하였다. 작품으로 <산수도(山水圖)>⋅<석천한유도(石泉閑遊圖)>⋅<오수청천도(午睡聽泉圖)>⋅<우수조옹도(倚樹釣翁圖)>⋅<한암초충도(寒巖草蟲圖)> 등이 있다.
“양촌(陽村) 마군후(馬君厚)”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며, 생몰년은 미상이다. 자는 백인(伯仁)이며,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림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특히 인물과 영모(翎毛)에 뛰어났으며, 1851년(철종 2)의 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촌녀채종도 村女採種圖〉는 시골에서 밭가는 여인들을 그린 풍속 장면이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수하승려도 樹下僧侶圖〉와 〈묘도 猫圖〉,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쌍토도〉등이 전한다.
“화재(和齋) 변상벽(卞相壁)”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밀양,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이다. 숙종 때 화원(畵員) 거쳐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63년과 1773년 두 차례에 걸쳐 영조 어진(英祖御眞) 제작에 참여하였다.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고양이[卞猫], 변계(卞鷄)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초상화도 잘 그려 국수(國手)라는 칭호를 받았다. 조선 후기 사실주의 화법의 전개에 중요한 구실을 했으며, 사생풍 동물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표작으로 (화조묘구도〉와〈고양이와 참새〉,〈암탉과 병아리〉등이 있다.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이다. 자는 이숙, 호는 현재(玄齋),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또는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을 사인삼재(士人三齋)라고 부른다. 심사정(沈師正)은 일찍부터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하여 중국의 남화와 북화를 종합한 새로운 화풍을 이루어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1748년(영조 24년)에 왕의 어진을 그리는 모사중수도감(摸寫重修都監)의 감동(監董)이 되었다. 특히 화훼(花卉), 초충(草蟲)을 비롯하여 영모(翎毛)와 산수화에 뛰어났다. 화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파교심매도 灞橋尋梅圖> <맹호도(猛虎圖)> <화수초충도(花樹草蟲圖)> 덕수궁 미술관 소장의 <추포도(秋圃圖)> <화항관어도(花港觀漁圖)> <계산고거도(溪山高居圖)> <운룡도(雲龍圖)> 간송미술관 소장의 <촉잔도(蜀棧圖)> 개인 소장의 <전가악사도(田家樂士圖)>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시문월색도(柴門月色圖)> 외에 다수가 있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 ?)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과 더불어 조선 4대 풍속화가로 손꼽힌다. 신윤복도 도화서의 관원이 되는데 관직은 첨정과 첨절제사에 이르렀다. 인물화와 풍경화 외에도 많은 양의 풍속화를 남겼는데, 그 중에는 양반의 위선적인 태도와 이중 잣대를 풍자하고 부녀자들의 자유연애와 애환을 묘사했으며 해학이 담긴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1800년 정조 사후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그의 작품 활동도 쇠퇴기에 접어든다. 그가 남긴 작품은 1813년의 작품까지 전해지는데, 대략 1813년 이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정확한 사망일과 사망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작품으로는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미인도(美人圖)> 등이 있다.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이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화려한 색을 사용하여 기생이나 무당의 그림을 즐겨 그렸으며, 시골 주막의 서민적인 풍속 또한 날카로운 화필로 잘 그려냈다. 시정 촌락의 풍속도 중에서도 기녀(妓女)·무속(巫俗)·주점의 색정적인 면을 많이 그린 풍속화가로서 현실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이는 유교주의 사회에 대한 예술 면에서의 항의였고, 인간주의의 표방이라는 평가와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첩>에는〈단오도(端午圖)>〈연당(蓮塘)의 여인(女人)〈무무도(巫舞圖)>〈산궁수진(山窮水盡)〉〈선유도(船遊圖)〉등이 있고, <미인도>와 <풍속화첩>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무대는 오른쪽에 건반악기와 타악기, 현악기, 목관악기 등 연주자의 자리가 마련이 되고, 배경에는 이름난 화가들의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동물화 등의 각종 그림을 영상으로 투사하고, 동화영상으로 운치를 더한다. 객석 가까이에 놓인 불꽃 형태의 여러 개의 등은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남녀 무용수의 춤사위는 서양의 어느 춤 못지않은 예술성과 율동미로 해서 관객의 탄성을 불러일으키고, 연주자들의 출중하고 탁월한 기량이 공연의 수준을 100% 상승시키고, 해설자의 구수한 해설과 함께 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어 간다.
이소영의 수묵동화 영상, 유태환의 음악감독, 손철주의 해설, 정마리의 노래, 소명진의 해금, 이신예의 판소리, 김빛여울의 민요, 이민주와 황태인의 무용, 김성수의 팝핀, 조승현의 작곡, 김석순의 편곡, 류영은의 피아노, 이준혁의 기타, 오경준의 피리, 소명진의 해금, 최세윤의 25현 가야금, 신승민의 대금, 김도희와 김다솜의 타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대표 김영옥)의 <화통(畵通) 콘서트>를 친 대중적이고, 총체적인 예술공연작으로 창출시켰다. 11월 23일 박정기(朴精機)
코멘트 0
|
이용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고객센터 제휴문의 문의게시판 찾아오시는길 | |
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40, 1402호 (우)04521 Tel 02-798-7242 Fax 02-6280-7542 사업자등록번호 : 106-90-75208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與民) 대표: 김영옥 e-mail : 5795apple@naver.com | ![]() ![]() ![]() |